지금까지 우리의 관심은 주로 벡터공간과 linear map에 집중되어 있었다. 그러나 선형대수학의 기본정리로부터 linear map은 사실 행렬과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, 이에 우리는 행렬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선형대수학의 두 번째 파트를 시작한다.
행렬식의 정의
행렬을 살펴볼 때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는 행렬식이다. 행렬식은 $n$차 정사각행렬 $A$에 대응되는 스칼라 $\det A$이며, 대수적으로 행렬식은 그 값이 $0$인지 아닌지에 따라 $A^{-1}$의 존재 여부를 결정해주는 실수로 볼 수 있다. 행렬식을 계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고, 이들 중 일부는 정의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이들 중 어떤 것도 행렬식의 본질적인 의미를 담지 못한다. 우리는 우선 행렬식을 올바르게 정의한 후, 이에 대한 존재성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행렬식의 계산을 소개한다.
행렬식은 $\Mat_n(\mathbb{k})$에서 $\mathbb{k}$로의 함수이다. 이제 $\Mat_n(\mathbb{k})$의 각 행렬들을 $\mathbb{k}^n$에 속하는 $n$개의 벡터들의 모임으로 생각하면 행렬식은 $(\mathbb{k}^n)^n$, 즉 벡터공간 $\mathbb{k}^n$을 $n$개 곱한 공간에서 $\mathbb{k}$로의 함수가 된다. 따라서 임의의 행렬 $A\in\Mat_n(\mathbb{k})$에 대하여, 우리는 $A$의 행렬식을 $\det(A)$로도 표기하고, 동시에 $A$의 열벡터들을 이용해 $\det(A_1,\ldots, A_n)$으로 표기하기도 한다. 이는 곧 두 $n^2$차원 $\mathbb{k}$-벡터공간 $\Mat_n(\mathbb{k})$와 $(\mathbb{k}^n)^n\cong \mathbb{k}^{n^2}$을 다음의 isomorphism
\[A=(A_1\;A_2\;\cdots\;A_n)\cong (A_1, A_2, \cdots, A_n)\cong \bigl((A_{11}, A_{21}, \ldots, A_{n1}), (A_{12},A_{22},\ldots, A_{n2}),\ldots, (A_{1n},A_{2n},\ldots, A_{nn})\bigr)\]을 통해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과 같다.
정의 1 $\mathbb{k}$-벡터공간 $V,W$에 대하여, 다음의 함수
\[f:\underbrace{V\times\cdots\times V}_\text{ {\footnotesize $n$} times}\rightarrow W\]가 multilinear map다중선형사상이라는 것은 $f$가 각각의 성분에 대해 linear인 것이다.
특별히 $n=2$인 경우, $f$를 bilinear하다고 부른다. (§쌍대공간, ⁋정의 1)
정의 2 두 $\mathbb{k}$-벡터공간 $V,W$와 multilinear map
\[f: \underbrace{V\times\cdots\times V}_\text{ {\footnotesize $n$} times}\rightarrow W\]이 주어졌다 하자. 만일 임의의 $v_1,\ldots, v_n$와 임의의 $i\neq j$에 대해 항상 다음의 식
\[f(v_1,\ldots, v_i, \ldots, v_j,\ldots, v_n)=-f(v_1,\ldots, v_j,\ldots, v_i,\ldots, v_n)\]이 성립한다면 $f$를 alternating multilinear map교대다중선형사상이라 부른다.
위와 같이 multilinear map $f:V\times\cdots\times V\rightarrow W$이 주어졌다 하자. 그럼 $f$가 antisymmetric이라는 것은 임의의 $v_1,\ldots, v_n$와 임의의 $i\neq j$에 대하여, 만일 $v_i=v_j$이면 $f(v_1,\ldots, v_n)=0$인 것이다.
명제 3 Multilinear map $f:V\times\cdots\times V\rightarrow W$가 alternating인 것은 $f$가 antisymmetric인 것과 동치이다.
증명
우선 $f$가 alternating이라 가정하자. 그럼 임의의 $v_i=v_j$를 만족하는 임의의 $v_1,\ldots, v_n\in V$에 대하여
\[\begin{aligned}f(v_1,\ldots,v_i,\ldots, v_j,\ldots, v_n)&=f(v_1\ldots, v_j,\ldots,v_i,\ldots, v_n)\\&=-f(v_1,\ldots, v_i,\ldots, v_j,\ldots, v_n)\end{aligned}\]이 성립하므로 $f$는 antisymmetric이기도 하다. (첫째 등식은 $v_i=v_j$라는 사실을, 둘째 등식은 $f$가 alternating이라는 사실을 사용하였다.)
거꾸로 $f$가 antisymmetric이라 하자. 임의의 $v_1,\ldots, v_n$과 임의의 $i\neq j$에 대하여, $f$가 antisymmetric이라는 사실은 다음의 식
\[f(v_1,\ldots, v_i+v_j,\ldots, v_i+v_j,\ldots, v_n)=0\]을 준다. 여기서 $v_i+v_j$는 각각 $i,j$번째 성분에 들어있다. 이제 multilinearity를 적용하면 위 식은
\[\begin{aligned}0&=f(v_1,\ldots, v_i,\ldots, v_i,\ldots, v_n)+f(v_1,\ldots, v_i,\ldots, v_j,\ldots,v_n)\\&\phantom{==}+f(v_1,\ldots, v_j,\ldots, v_i,\ldots,v_n)+f(v_1,\ldots, v_j,\ldots, v_j,\ldots, v_n)\end{aligned}\]이 되고, 다시 $f$는 antisymmetric이므로 $v_i, v_j$가 각각 두 번 나오는 첫째 항, 마지막 항이 $0$이 된다. 이로부터 원하는 결론을 얻는다.
특히, $f$가 변수 $n$개의 alternating linear map이고 $v_1,\ldots, v_n$ 중 하나가 다른 $n-1$개의 벡터들의 일차결합이라 가정하자. 그럼 multilinearity를 적용한 후, 위의 명제를 적용하면 $f(v_1,\ldots, v_n)=0$임을 알 수 있다.
이제 우리는 행렬식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.
정의 4 $D(e_1,\ldots, e_n)=1$을 만족하는 alternating multilinear map $D:(\mathbb{k}^n)^n\rightarrow \mathbb{k}$를 행렬식determinant이라 부른다.
우리는 아직 행렬식이 존재한다는 것도, 유일하다는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$\det$ 대신 $D$라는 표기를 사용했다. 다음 글에서 행렬식의 계산을 소개하며 이를 증명하고, 이후부터 표준적인 표기법 $\det$를 사용한다.
넓이와 부피
평행사변형의 넓이는 밑변의 길이에 높이를 구한 값으로 주어진다. 이와 비슷하게 평행육면체의 부피는 밑면의 넓이에 높이를 구한 값으로 주어진다. 어렵지 않게 이를 고차원으로 일반화시키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. 편의상 4차원 이상의 도형에 대한
위의 정의 또한 마찬가지로 해당 도형들의 넓이를 구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. 넓이와 부피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하는 것이 행렬식에 기하학적 의미를 부여해준다.
$n$차원 공간에서 일차독립인 $n$개의 벡터가 주어졌다 하자. 그럼 이들은 $n$차원의 입방체를 만들게 된다. 가령 $n=3$인 경우, 세 개의 벡터 $v_1,v_2,v_3$은 다음과 같이 평행육면체를 만든다.
서술의 편의상 앞으로의 내용은 모두 2차원 상에서의 넓이를 이용해 설명하지만, 어렵지 않게 이 내용들을 모두 $n$차원 공간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.
우선 우리는 어떠한 평행사변형이 단위넓이 1을 갖는지를 정의해야 한다. 물론 여기에는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으나,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을 단위넓이 1을 갖는 평행사변형으로 정의하는 것이다.
한편, 위의 정사각형에서 출발하여 다음의 두 규칙을 적용하면 모든1 평행사변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.
- 등적변형: 평행사변형의 한 변을 고정하고, 남은 한 변의 끝점을 고정한 한 변의 방향으로 평행이동하는 변형.
- 한 변은 고정된 상태로, 남은 한 변의 길이를 $k>0$배 하는 변형.
따라서 1번과 2번 각각의 규칙을 따라 평행사변형을 변형하였을 때, 넓이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만 정의한다면 모든 평행사변형의 넓이를 정의하는 것이 된다. 1번의 경우, 우리는 넓이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, 2번의 경우 넓이가 $k$배가 된 것으로 정의한다. 이렇게 정의한다면 모든 평행사변형의 넓이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평행사변형의 넓이와 동일해진다.2
행렬식의 기하학적 의미
행렬식에 기하학적 직관을 불어넣기 위해, 이 절에서는 $\mathbb{k}=\mathbb{R}$인 것으로 생각한다.
$D$가 음의 부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, $D$를 넓이함수로 볼 수 있다. 이 때 $D$의 부호는
우선 $D$가 만족해야 할 첫 번째 조건, 즉
일반적인 넓이의 개념에서는 평행사변형의 한 변의 길이를 $-1$배 하여도 넓이가 양수가 된다. 그러나 이 도형을 원래 도형과 반대되는 방향을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넓이를 음수로 볼 수도 있고, 그럼 $D$가 한 변의 길이의 임의의 스칼라배를 보존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, 등적변형을 생각하면 $D$는 다음과 같이 한 변에 해당하는 두 벡터를 더한 결과 또한 보존한다.
뿐만 아니라, 등적변형을 생각하면 고정된 한 변 $v_n$에 대하여, 밑면을 이루는 $n-1$개의 벡터 $v_1,\ldots, v_{n-1}$의 일차결합을 $v_n$에 더하여도 $D$의 값은 유지된다. 이는 곧, 만일 $v_n$이 $v_1,\ldots, v_{n-1}$의 일차결합이라면 $D(v_1,\ldots, v_n)=0$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명제 3에 의해 이는 $D$가 alternating이라는 것과 동치가 된다.
우리는 아직 행렬식의 유일성을 증명하지 않았지만, 정의 4는 행렬식을 완전하게 결정해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, 따라서 행렬식을 부호가 있는 부피로 생각할 수 있다. 이제 이 그림 상에서, 행렬식이 $0$인 것과 $A$가 가역이 아닌 것이 동치인 이유는 $n$차원 공간에서, $n$차원 미만의 나란히꼴의 부피는 항상 0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.
다음 글에서는 실제로 행렬식이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인다. 이를 통해 행렬식의 여러 계산방법을 알게 된다.
참고문헌
[Goc] M.S. Gockenbach, Finite-dimensional linear algebra, Discrete Mathematics and its applications, Taylor&Francis, 2011.
댓글남기기